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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EMORY/일상 이야기

죽음에 관하여

romeo1052 2014.10.28 00:44



한 연예인의 죽음따위 그저 아이고 안됐네 쯧쯧하면 그만 이었다.

최진실씨와 잇달아 최진영씨가 자살하셨을때도 불쌍하다. 안타깝다 탄식하고 그만이었다.


그치만 이건 너무 슬프고 허망하고 안타깝다.

나는 그에게 고작 몇장의 앨범을 사준게 다이지만

그는 나에게 셀수없을정도로 수많은 시간 좋은 음악으로 나에게 많은것을 주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화젯거리를 갖게 해주었고

감동을 재미를 전율을 희망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가 위독할때에 친구에게 나는 그가 남겨준 곡들은 이미 평생을 들을만큼 많이 있으니 상관없지만

이렇게 죽는건 너무 허망하지않을까 라고 말을 했었는데

지금 한곡 한곡 듣다보니 너무나도 모자랐다.

앞으로도 더 많은 더좋은 음악 우리에게 들려줄수 있었을텐데 이제와서 안타깝다.


그때에도 좋았기에 감동을 받았던 음악들이

지금 다시들어보니 너무나도 명곡이다.


비단 음악만이 아니라 생각이 말 한마디가 힘있고 강하게 울리던 당신을 다시는 볼수없음이 안타깝다.

연예인의 삶 그리고 그 죽음이 슬퍼서 눈물이 난다.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는다.

왜 어째서 당신이 죽어야하는가 이말이다.


주변사람이 죽을때마다 이렇게 가슴을 후벼파 속이 텅빈것처럼 허무할수가 없다.

기껏 끊어보려고 참고있던 담배를 다시 또 피운다.

대체 뭐란말인가 이놈의 삶이란

이렇게 쉽게 준비할시간도 없이 지워져버리는데 무엇을 위해 내일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인내하며 살아야한단 말이냐.


너무나 행복해서 견딜수없을정도로 사랑하는것들을 남겨두고 가는길이 못견딜만큼 아쉽고 원통하겠지만

부디 좋은곳으로 가시길 기도합니다.


계속 좋은 음악 많이 만들어주세요

언젠가 그곳에서 다시 만나면 들을수 있도록.


이 울적한 기분 마음 하소연하고싶은 사람이 떠오르는것도 슬픔의 이유인걸까.

 




댓글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oulco.tistory.com BlogIcon 지성의 전당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합니다. www.uec2018.com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2018.08.05 13: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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